30년만에 다시 부르는 그 이름, 엄마 30년만에 다시 부르는 그 이름, 엄마
△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사진=KOREAN DIASPORA KBS YouTube) △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사진=KOREAN DIASPORA KBS YouTube)
음, 엄마, 엄마, 엄마. 음, 엄마, 엄마, 엄마.
여섯 살에 어머니와 헤어진 김애자 씨가 30년 만에 다시 부를 수 있었던 한마디입니다. 이제 와서 마음껏 불러보는 한마디 ‘엄마’가 KBS 공개홀을 가득 채웁니다. 딸을 찾으러 나온 서울의 권순이 씨는 제주의 김애자 씨를 영상으로 만났습니다. 권순이 씨는 자신의 딸의 목에는 어렸을 때 종기가 나서 생긴 작은 흉터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애자 씨는 목에 있는 흉터를 보여줬어요. 흉터를 보고 김애자 씨가 30년 전 헤어진 딸이라고 확신한 권순이 씨는 그제야 마음 편히 행복의 눈물을 흘립니다. 권순이 씨는 그토록 듣고 싶었던 소리 ‘엄마’를 딸에게 30년 만에 듣고 자신을 용서하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서가장소중한,누구보다아름다운어머니를30년이나만나지못하면그슬픔은말로할수없을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딸에게 더 나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며 사과의 눈물을 흘리는 이산가족의 모습은 대중의 눈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이산가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약 1천만 명에 달합니다. 많은 이산가족은 피를 나눈 부모, 형제와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한반도에서는 총 21회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사연을 전 국민에게 공유하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과거에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KBS 1TV에서 방송된 KBS ‘특별 생방송-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입니다. 여섯 살에 어머니와 헤어진 김애자 씨가 30년 만에 다시 부를 수 있었던 한마디입니다. 이제 와서 마음껏 불러보는 한마디 ‘엄마’가 KBS 공개홀을 가득 채웁니다. 딸을 찾으러 나온 서울의 권순이 씨는 제주의 김애자 씨를 영상으로 만났습니다. 권순이 씨는 자신의 딸의 목에는 어렸을 때 종기가 나서 생긴 작은 흉터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애자 씨는 목에 있는 흉터를 보여줬어요. 흉터를 보고 김애자 씨가 30년 전 헤어진 딸이라고 확신한 권순이 씨는 그제야 마음 편히 행복의 눈물을 흘립니다. 권순이 씨는 그토록 듣고 싶었던 소리 ‘엄마’를 딸에게 30년 만에 듣고 자신을 용서하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서가장소중한,누구보다아름다운어머니를30년이나만나지못하면그슬픔은말로할수없을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딸에게 더 나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며 사과의 눈물을 흘리는 이산가족의 모습은 대중의 눈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이산가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약 1천만 명에 달합니다. 많은 이산가족은 피를 나눈 부모, 형제와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한반도에서는 총 21회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사연을 전 국민에게 공유하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과거에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KBS 1TV에서 방송된 KBS ‘특별 생방송-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입니다.
△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영상=KOREAN DIASPORA KBS 유튜브) KBS, 방송계의 새 역사를 쓰다 △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영상=KOREAN DIASPORA KBS 유튜브) KBS, 방송계의 새 역사를 쓰다
KBS는 한국전쟁 33주년과 정전협정 3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바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이산가족을 방문하는 100,952건의 신청이 접수되어 실제로 53,536건이 방송에 소개되었고, 10,189건의 국내 및 해외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같은 상봉 성공률 19.03%는 이전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 시도와 비교하면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KBS는 한국전쟁 33주년과 정전협정 3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바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이산가족을 방문하는 100,952건의 신청이 접수되어 실제로 53,536건이 방송에 소개되었고, 10,189건의 국내 및 해외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같은 상봉 성공률 19.03%는 이전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 시도와 비교하면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 KBS에 위치한 20,522건의 기록물(사진=KBS 아카이브) △ KBS에 위치한 20,522건의 기록물(사진=KBS 아카이브)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에 시작된 생방송은 그해 11월 4일까지 총 138일간 계속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이 무려 78%였어요. 한국 TV 시청자 10명 중 8명이 이산가족 상봉 순간에 함께한 것입니다.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생방송 비디오 녹화 원본 테이프 463개, 담당 프로듀서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앨범, 사진 등 20,522건의 기록물은 모두 국내의 기념비적인 유산이 되었습니다. 한반도 평화의 촉매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에 시작된 생방송은 그해 11월 4일까지 총 138일간 계속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이 무려 78%였어요. 한국 TV 시청자 10명 중 8명이 이산가족 상봉 순간에 함께한 것입니다.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생방송 비디오 녹화 원본 테이프 463개, 담당 프로듀서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앨범, 사진 등 20,522건의 기록물은 모두 국내의 기념비적인 유산이 되었습니다. 한반도 평화의 촉매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냉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BBB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한반도의 비극적인 냉전과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이 다시 만나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장면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인권과 보편적 인류애를 높인 생생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여의도 광장과 KBS 주변의 모인 사람들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냉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BBB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한반도의 비극적인 냉전과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이 다시 만나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장면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인권과 보편적 인류애를 높인 생생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여의도 광장과 KBS 주변의 모인 사람들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 이산가족의 모습(사진=KBS아카이브) △ 이산가족의 모습(사진=KBS아카이브)
유엔 전 사무총장 하비에르 페레스데 게야르(Javier Pérez de Cuélar)는 1983년 김경원 유엔 대사와의 회담에서 이산가족의 비극에 대해 깊은 동정과 이해를 표했습니다. 또 제70차 IPU(Inter-Parliamentary Union) 서울 총회에 참석한 7개국 17명의 위원과 국제인권연맹 이사 일행이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KBS 본관 중앙홀에 마련된 기자실에는 세계 25개국 기자들이 상주하며 상봉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유엔 전 사무총장 하비에르 페레스데 게야르(Javier Pérez de Cuélar)는 1983년 김경원 유엔 대사와의 회담에서 이산가족의 비극에 대해 깊은 동정과 이해를 표했습니다. 또 제70차 IPU(Inter-Parliamentary Union) 서울 총회에 참석한 7개국 17명의 위원과 국제인권연맹 이사 일행이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KBS 본관 중앙홀에 마련된 기자실에는 세계 25개국 기자들이 상주하며 상봉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 984 골드 머큐리 애드호너럼 (ADHONOREM) 위 (사진=KBS 아카이브) △ 984 골드 머큐리 애드호너럼 (ADHONOREM) 위 (사진=KBS 아카이브)
또,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시에서 개최된 제6회 세계 저널리스트 대회에서, 이 프로그램을 「1983년도의 가장 인도적인 프로그램」으로 선정했습니다. 1984년 2월 17일 아프리카 가봉에서 열린 제24차 ‘골드 머큐리 세계평화협력회의’ 총회에서는 방송기관 최초로 ‘984 골드 머큐리 애드 호너럼'(ADHONOREM)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남북한 이산가족 문제를 국제적인 화두로 떠올렸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습니다. 1983년 당시 대한적십자사 총재였던 유창순 씨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미루지 않겠다며 남북회담 재개를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또 전두환 대통령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지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산가족 찾기 방송 2년 만인 1985년 북한 대표단이 KBS를 방문했고, 그해 남북한 이산가족의 첫 번째 상봉이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찾기’ 방송 7년 만인 1990년에는 6.25전쟁 당사자이자 공산권 대부였던 소련과의 수교도 성사되었습니다. 또,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시에서 개최된 제6회 세계 저널리스트 대회에서, 이 프로그램을 「1983년도의 가장 인도적인 프로그램」으로 선정했습니다. 1984년 2월 17일 아프리카 가봉에서 열린 제24차 ‘골드 머큐리 세계평화협력회의’ 총회에서는 방송기관 최초로 ‘984 골드 머큐리 애드 호너럼'(ADHONOREM)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남북한 이산가족 문제를 국제적인 화두로 떠올렸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습니다. 1983년 당시 대한적십자사 총재였던 유창순 씨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미루지 않겠다며 남북회담 재개를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또 전두환 대통령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지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산가족 찾기 방송 2년 만인 1985년 북한 대표단이 KBS를 방문했고, 그해 남북한 이산가족의 첫 번째 상봉이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찾기’ 방송 7년 만인 1990년에는 6.25전쟁 당사자이자 공산권 대부였던 소련과의 수교도 성사되었습니다.
역사의 중심을 지키는 이지연 아나운서 역사의 중심을 지키는 이지연 아나운서
“이산가족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KBS의 ‘이산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이지연 아나운서 “이산가족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 이지연 아나운서
사실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기획은 일회성 방송에 불과했습니다. 처음에 1시간 반짜리 프로그램이 4시간으로 늘었고, 그 후 특별편성 4일, 결국 138일간의 긴 방송이 이어졌습니다. 방송 진행을 맡은 이지연 아나운서는 같은 남쪽에서 이렇게 많은 이산가족이 떨어져 살고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30년 동안 서로의 소식을 몰랐던 이들은 혹시나 하는 저마다의 희망을 품고 KBS 본관에 모였습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기획은 일회성 방송에 불과했습니다. 처음에 1시간 반짜리 프로그램이 4시간으로 늘었고, 그 후 특별편성 4일, 결국 138일간의 긴 방송이 이어졌습니다. 방송 진행을 맡은 이지연 아나운서는 같은 남쪽에서 이렇게 많은 이산가족이 떨어져 살고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30년 동안 서로의 소식을 몰랐던 이들은 혹시나 하는 저마다의 희망을 품고 KBS 본관에 모였습니다.
△1983년 KBS 본관에 모인 이산가족들(사진=KBS 아카이브) △1983년 KBS 본관에 모인 이산가족들(사진=KBS 아카이브)
천만 이산가족의 발걸음이 KBS 본관을 뒤덮었습니다. 밤새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담요나 신문지를 트럭에 싣고 오는 사람이 있었고, 어묵을 무료로 나눠주며 이산가족의 희망을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은 글자를 모르는 이산가족을 위해 편지를 대신 썼고, 적십자 부녀봉사회는 이산가족을 찾는 사람들에게 물을 제공해 서울시는 만남의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온 국민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의 한 방울을 보탰습니다. 천만 이산가족의 발걸음이 KBS 본관을 뒤덮었습니다. 밤새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담요나 신문지를 트럭에 싣고 오는 사람이 있었고, 어묵을 무료로 나눠주며 이산가족의 희망을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은 글자를 모르는 이산가족을 위해 편지를 대신 썼고, 적십자 부녀봉사회는 이산가족을 찾는 사람들에게 물을 제공해 서울시는 만남의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온 국민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의 한 방울을 보탰습니다.
△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 이지연 아나운서 (사진=KOREAN DIASPORA KBS 유튜브) △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 이지연 아나운서 (사진=KOREAN DIASPORA KBS 유튜브)
아나운서 이지연 씨는 하루 평균 16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물, 식사는 물론 화장실에 가는 것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혹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산가족 상봉이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힘든 와중에도 그녀는 항상 출연자들을 상냥하게 대했고, 동시에 차분한 진행을 계속했어요. 그녀를 중심으로 138일간 진행된 방송 덕분에 여러 이산가족이 30년간 떨어져 살았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나운서 이지연 씨는 하루 평균 16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물, 식사는 물론 화장실에 가는 것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혹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산가족 상봉이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힘든 와중에도 그녀는 항상 출연자들을 상냥하게 대했고, 동시에 차분한 진행을 계속했어요. 그녀를 중심으로 138일간 진행된 방송 덕분에 여러 이산가족이 30년간 떨어져 살았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사진=KBS 아카이브) △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사진=KBS 아카이브)
현재진행형, 이산가족의 아픔 현재진행형, 이산가족의 아픔